입추가 지나서도 그칠 줄 모르는 더위에
여전히 여름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다 나흘 전, 처서가 지났죠. 여전히 등줄기가 젖고 선풍기 없인 잠자리에 들 수 없지만,
청명한 하늘 아래 잠자리가 노니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 기온이 낮아졌음을 느낍니다.
시원해진 몸과 마음으로 여름을 떠나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며 읽을 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바질 열 잎, 처서 책 추천 시작합니다.
editor.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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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여름이 한창일 때 걸었던 길을 처서가 지난 어느 날, 같은 시간에 걷게 된 일이 있었어요. 과일 노점상에 진열되어 있던 설익은 자두가 이제는 푹 익어 거의 포도송이 같아 보이더라구요. 처서는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본격적인 가을을 의미하죠. 낮아진 기온이 피부로도 완연히 느껴지는 날이었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가을 하면 떠오르는 작은 일화가 있어요. 때는 23년 10월, 새로 개봉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고 난 후였어요. 막 운 터라 가쁜 마음을 추스를 겸 따릉이 페달을 열심히 밟아 집에 돌아왔더랬죠. 기모 후드티를 입고 있어 몸이 후덥지근했던 터라 곧장 아랫단을 잡아 훅 벗었고, 뭔가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네…. 낙엽이었어요. 실바람에도 잎이 지던 때라 모자에 낙엽이 담기는 줄도 모른 채 신명 나게 자전거를 탔던 거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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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로 덩달아 영화도 오래 기억에 남았죠. 이 이야기를 왜 이렇게나 길게 하느냐면요…. 책 ⟪사나운 애착⟫을 추천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더 많은 모녀 이야기를 수집하고 싶어 집어 들었던 책이거든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아시다시피 모녀 이야기지요. 서로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엄마와 딸 사이를 SF적 상상력으로 멋지게 은유한 영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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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사나운 애착⟫ 또한 저자 비비언 고닉의 어머니와 자신에 대한 에세이예요. 책에 묘사된 바에 의하면 어머니는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고, ‘억척스럽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고지식한 사람이에요. 그런 어머니 밑에서 감정적으로 휘말리듯 살아온 저자는 어느 날 문득 서로가 너무나 닮았음을 알게 되지요. 특히 연인 관계에서 상대를 어떻게든 내려다보려는 본능을 지적받곤, 어머니가 노골적으로 부렸던 권위의식을 본인이 똑같이 행하고 있음을 깨닫는 거죠. 어쩌면 모녀 관계란 것은, 너무 닮았기에 힘들고 불가해한 듯합니다.
"엄마가 뜨거운 가슴에 날 마구잡이로 끌어안도록 내버려두었다. 몸을 빼지 않았다. 내가 속한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와 함께 있으면 여러 가지 확실한 문제가 있다. 숨이 막힌다. 그래도 안전하다."
비비언 고닉의 말처럼 확실히 문제가 있지만, 명백히 사랑이 존재하는 관계. 그것이 ‘모녀’죠. 곧 추석이 다가오는데 엄마께 이런 말을 전해보렵니다. “사랑해요.” 제 모자에 슬그머니 쌓였던 낙엽처럼, 사랑한다는 말도 슬그머니 건네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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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하던 여름이 떠나가고, 침전감과 함께 한 해의 마무리를 예감하게 되는 계절. 가을이란 계절을 만날 때 어떤 감정을 느끼시나요? 이런 헛헛함을 맞이하기에 외롭지 않고자 독서의 제철이 가을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 같아요.
'제철'이란 말을 검색하면 '알맞은 시절'이라는 뜻이 나와요. 채소가 신선하게 자라기 위해 알맞은 시절, 살아남은 여러 나무들이 꽃까지 피워내기에 딱 좋은 계절임을 표현해요. 가을은 바쁘게 지나온 한 해를 책과 함께 한 장씩 넘기며 돌아보고, 나 자신을 다시 신선하게 자라게 하기에 제철인 계절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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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실⟫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한강 작가님께서 작가이자 ‘쓰는 사람’으로 남아 있을 때에, 살아있는 것들에 어떤 생명력을 부여하고 느껴왔는지를 담아낸 책입니다. 처음으로 갖게 된 작가님의 집, 그곳에서 만난 북향의 방과 정원에서 작가님이 발견한 사랑과 푸릇함이 고스란히 적혀 있어요. 직접 찍은 식물과 정원의 사진, 시, 에세이가 함께 담겨 있어서 작가님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마음이 듭니다.
한 작가의 걸음과 글을 쓰는 생각의 마디마디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건 읽는 사람으로서 참 행복한 경험이 아닐까요. 역사적 아픔이 담긴 작품들을 써오면서도 유려하게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생명력과 살아있음을 느꼈다는 작가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글쓰기가 나를 밀고 생명 쪽으로 갔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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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라는 정원에 스며든 글쓰기라는 빛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리고 식물이 추수와 수확을 맞는 이 계절, 우리는 지금 어떤 마음의 정원을 피워내고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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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아침에 눈을 뜨면 새벽이 조금 더 길어져 있습니다. 한여름에는 일찍부터 환하게 밝던 창밖이 아직 어두운 걸 보면, 아직 더위는 남아 있는데 여름은 조금씩 지나가고 있다는 게 실감 납니다. 처서가 지나고 나니 정말 계절이 바뀌고 있구나 싶기도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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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요즘은 여름의 끝과 잘 어울리는 책을 찾게 됩니다. 이번에 제가 고른 책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입니다.
주인공 폴은 오랫동안 연인 로제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익숙하고 안정적인 관계지만, 로제는 폴에게 늘 조금씩 외로움을 남깁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폴에게 젊고 적극적인 시몽이 나타납니다. 자신을 좋아해주는 시몽을 만나면서 폴은 오랜만에 설렘을 느끼지만, 오래된 사랑과 새로운 사랑 사이에서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질문 하나가 폴의 일상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습니다. 익숙한 관계에 머물러 있던 사람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다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사랑에도 계절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는 뜨겁고 선명했던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어느 순간에는 그 익숙함이 편안함인지 권태인지 헷갈리기도 하니까요. 새로운 설렘 앞에서 흔들리는 폴의 마음도 그래서인지 낯설지 않게 다가옵니다.
아직 낮에는 한여름처럼 덥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조금씩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요즘. 여름이 끝나가는 게 아쉽다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천천히 읽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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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좋아합니다. 매년 여름을 기다리며 다른 계절들을 보낼 만큼요. 다른 때보다 긴 해는 왠지 하루를 더 알차게 보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어 ‘여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도 했어요.
여름을 지나오면 늘 한 편의 시가 남는 것 같아요.
올해는 안희연 시인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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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여름방학에 제주 여행을 갔다가 선물 받은 책인데요. 여름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는 그저 좋았던 문장들이, 여름이 끝나가는 지금은 새삼 다르게 와닿습니다.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시간은 반으로 접힌다 펼쳐보면 다른 풍경이 되어 있다”
여름을 지나며 가장 깊게 남은 문장입니다. 돌아보면 이번 여름에는 유난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알게 되었고, 바다에서는 내내 수영만 하다가 열사병에 걸리기도 했고…. 어떤 마음에는 기꺼이 뛰어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잃어버린 것도 있고요. 그래도 지나온 여름을 후회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결국 지나온 것들은 조금씩 내가 되고, 내가 살아갈 세계가 된다고 믿으니까요.
처서가 지나고 이제는 정말 가을을 맞을 시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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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번 여름을 지나오며 어떤 문장을 남겼나요?
그리고 어떤 가을을 맞이하고 싶으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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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의 이야기 잘 들으셨나요?
친구들과 새해 인사를 주고 받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9월이 다가오네요.
새해 목표를 얼마나 이루고 해냈든
열심히 살아냈다면 그만입니다.
바질레터는 다음 열한 잎으로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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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바질레터, 어떠셨나요?
무럭무럭 자라나고 싶은 바질레터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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