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선선한 바람이 불고,
추석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올해 추석은 유난히 긴 연휴라 평소보다 조금은
느긋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희 바질레터 에디터들은 시간이 많은 연휴인 만큼,
평소에 ‘언젠가 읽어야지’ 하고 미뤄두었던 벽돌책을 꺼내봤습니다!
몇백 페이지가 넘는 벽돌책도 조금씩 읽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닿아 있을지도 몰라요.
긴 연휴만큼 긴 이야기를 읽으며, 평소보다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editor.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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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디스 걸』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 ㅣ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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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에 제가 고른 벽돌책은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의 ⟪노바디스 걸⟫입니다. 무려 656쪽인데요. 평소라면 책 두께만 보고 ‘이건 언제 다 읽지?’ 하고 살짝 뒤로 미뤄뒀을 책인데, 긴 연휴를 핑계 삼아 이번에는 제대로 펼쳐보기로 했습니다.
⟪노바디스 걸⟫은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의 생존자인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가 자신의 삶을 직접 기록한 회고록입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부터 엡스타인과 맥스웰을 둘러싼 일을 겪게 된 과정, 그곳에서 벗어난 뒤 자신의 삶을 다시 만들어가는 시간, 그리고 오랜 시간 목소리를 내며 진실을 알리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내 과거를 밝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여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서다. 한때 나는 침묵 속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제는 내 목소리를 찾았다. 이 책은 그 변화의 결과다."
처음에는 유명한 사건을 다룬 책이라고 생각해서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읽을수록 사건 자체보다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이라는 건 누군가의 삶에서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해버린 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그 이후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니까요.
읽는 내내 한 사람의 삶이 지나온 시간을 따라가듯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그래서인지 656쪽이라는 분량도 단순히 ‘두꺼운 책’이라는 느낌보다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여다보기 위해 필요한 시간처럼 느껴져요. 평소에는 두꺼운 책을 보면 첫 장을 펼치기도 전에 부담부터 느끼곤 하잖아요! 하지만 이번 추석처럼 시간이 조금 넉넉한 때라면 이야기가 다를 것 같습니다. 하루에 조금씩 읽어도 좋고, 한참 읽다가 잠시 덮어두었다가 다시 펼쳐도 좋고요.
이번 연휴에는 가볍게 한 권을 끝내기보다, 한 사람의 삶을 오래 따라가 볼 수 있는 벽돌책을 골라보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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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진짜 벽돌을 깰 때가 되었다..... 이 책 왜 아직 안 읽음, 질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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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ㅣ 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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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의 다크 판타지 퍼레이드(a.k.a 인외파티) 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보셨나요? 하지만 롯데월드의 가로등 신사님 이전에 아주 멋지고 귀여운 인외가 있었답니다.... 바로 ⟪프로젝트 헤일메리⟫ 속 로키인데요!
주인공 그레이스는 어느 날 정체 불명의 우주선 안에서 눈을 떠요.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은 누구인지도 흐릿한 시점에 그레이스를 맞아 주는 건 명찰이 달린 백골의 시체 두 구일뿐입니다. 아주 지난한 과정을 거쳐 자신이 지금 우주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그레이스는 그 경위를 천천히 살피게 돼요.
전말은 이렇습니다. 지구의 과학자들은 태양이 원인 불명의 이유로 점점 빛을 잃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대로면 곧 지구에 있는 모든 생물이 죽게 될 것도요. 이를 막기 위해 최정예 인원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시작돼요. 헤일메리는 미식축구에서 ’불가능할 것을 알지만 일단 한번 던져 보는, 경기 종료 직전의 도박성 슈팅‘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그레이스는 사실 단순한 자문위원이었는데, 모종의 이유로 헤일메리호에 탑승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기억해내게 됩니다. (여기에도 스포가 될 참 많은 내용이 잠들어 있습니다…) 고립되었다는 공포감과 앞으로 헤쳐나갈 일들에 대한 막막함을 안고 있던 그레이스 앞에 엄청난 기술력의 우주선이 등장합니다. 우주선 속 미지의 인물(?)은 그레이스와 끝없는 소통을 시도한 끝에 두 우주선은 태양과 자신의 행성을 구하겠다는 같은 목표로 여기 다다랐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그리고 그 우주선의 선장이 바로 외계인 로키입니다.
“다른 유사성. 너랑 나는 둘 다 우리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 함. 왜, 질문? 진화는 죽음을 싫어함.“
”종족 전체로 봐서 좋은 일이잖아.“ 내가 말한다.
”자기희생 본능은 종 전체가 지속될 가능성을 높여줘.”
“모든 에리디언이 다른 이들을 위해 기꺼이 죽지는 않음.“
나는 키득거린다. “인간들도 그래.”
“너랑 나는 좋은 사람.” 로키가 말한다.
“그러게.” 나는 미소 짓는다.
“그런 것 같아.”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만난 다른 세계에서 온 두 인물. 언어도, 기술도 다르지만 두 사람의 쌓여가는 우정을 따라가신다면 긴 명절에 따뜻한 여운을 한 스푼 더하실 수 있을 거예요. 약 690페이지라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그를 단단하게 뒷받침하는 스토리가 정말 매력적인 책입니다. 연초 소설 분야 부동의 1위, 이제는 한번 읽어 보시면 어떨까요? 좋음, 좋음,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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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은 어떻게 됐냐는 둥 결혼 생각은 있냐는 둥 하는 가족들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있어 보이는 방패로 ⟪죄와 벌⟫은 어떠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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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은 ‘필독서’라는 오랜 수식어 탓에 어느 서가에나 있지만 어느 누구도 읽지 않은 소설이기도 하죠. 사실 이 책은 출근길이나 퇴근길처럼 일상의 순간에 함께하기엔 그 두께로나 무게로나 부담스럽긴 합니다. 그래서 저도 작년 겨울, 퇴사를 앞두고 뭔가 순수하게 ‘읽었다!’는 느낌이 날 수 있는 책을 완독해보고 싶은 마음에 골랐던 책이었어요. 앞으로 시간은 많을 테고, 그 시간을 무용하게만 흘려보낼 순 없으니 말이에요. 그러니 이번 추석 연휴, 시간도 많은데 침대에 누워 있기보다 책상에 각잡고 앉아 ⟪죄와 벌⟫을 읽어보는 건 어떠신지요.
하지만 꼭 이런 도전 의식을 동력 삼을 필요는 없어요. 그런 포부가 아니더라도 꽤 읽을 만한 소설이거든요. 다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읽어보셨나요? 범죄소설계의 자강두천, ⟪죄와 벌⟫과 ⟪이방인⟫ 아니겠습니까.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단지 태양빛이 강하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사람을 총쏘아 죽였다면,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금품 갈취를 위해 전당포 노파를 가격해 죽이죠. 그 과정에서 노파의 동생 ‘리자베타’까지 살인하는 과오를 저질러버리고, 죄책감에 못 이겨 일상을 제대로 영위해나가지도 못합니다. 그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요? 그가 쓴 논문을 보면 알 것도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급 부류(평범한 사람들), 즉 오로지 자신과 비슷한 자들을 생산하는 데만 기여하는, 말하자면 재료이며, 다른 하나는 본질적으로 사람들, 즉 자신이 속한 무리에서 새로운 말을 할 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로 자신을 자연스럽게 후자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꽤 좋은 성적을 받는 학생이었거든요. 나폴레옹처럼 훗날 영웅이 될 자신이 배곯아 죽을 바에 열등한 노파 한 명 죽는 게 세상에는 훨씬 이롭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범죄에는 언제나 흔적이 남고, 꼬리가 길면 잡히기 마련이지요. 라스콜니코프는 과연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았을까요?
‘권선징악’이라는 다소 교훈적인 메시지와 함께 짝지어지던 고전소설이었기에 읽기 전까지 큰 기대도 감흥도 없었습니다. 역시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고, 책도 우선은 펼쳐 보는 게 정답인 듯합니다. 권선징악은 둘째치고, 주인공의 궤변에 하나 하나 토를 달고 싶은 심정이라 라스콜니코프 안티팬을 양성하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고도의 전략인지 가히 의심스러웠다는…
하여간 명절 잔소리를 피하고 싶은 분, 시시때때로 사촌동생에게 바짓가랑이를 붙잡히는 분, 적막한 자취방에서 소일해야 하는 분 모두 ⟪죄와 벌⟫로 알찬 시간 보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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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아기 돼지에게도 당당하게 건넬 수 있는 벽돌책이라면, ⟪미들마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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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마치⟫는 소설 속 배경이 되는 영국 시골 소도시의 이름이에요. 미들마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냈어요. ⟪미들마치⟫의 부제는 ‘지방생활의 고찰’인데요. 영어 부제목으로 보면 작가의 의도가 보다 더 와닿아요. ‘A Study of Provincial Life’로, 연구에 가까울 만큼 한 사회를 관찰하고 기록하여 사람들의 이야기를 포착하고자 한 거죠.
이 책을 접하게 된 계기는 ⟪파친코⟫를 쓰신 이민진 작가님 덕분이었어요. 이민진 작가님께서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인터뷰 하신 내용을 우연히 봤어요. 마침 ⟪밝은 밤⟫ (최은영), ⟪파친코⟫ (이민진), ⟪영혼의 집⟫ (이사벨 아옌데)를 읽고 대가족, 대에 걸쳐 전해지는 삶을 써 내려간 소설에 나름대로 빠졌었거든요. 사랑, 증오, 비밀, 복수, 배신…… 이 모든 것들이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아주 내밀하지만 자연스럽게 보여질 수 있잖아요. 가족의 구성원이 많을수록 각 가문과 가정의 형편, 인간상이 달라지니 다양한 사람들의 군상을 담을 수 있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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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3부 ‘죽음을 기다리며’ 속 한 장면이에요. 소탈하고 노동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가정에서 자라난 ‘메리 가스’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모부 ‘피터 페더스톤’을 간병하는 밤 중 떠올린 상념이 담겨 있어요. 좀 전, 가지각색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대가족을 담은 소설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저와 교집합이 많은 인물이 입을 뗄 때마다 밑줄을 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봐요. 메리 가스는 젊은이의 치기를 가지고 있어요. 다정하고 소신 있는 여성인 동시에 세상사를 다 파악한 듯이 콧방귀를 뀌는 건방진 면도 있지요.
"그날 밤 그녀는 늘 하듯이 그날 있었던 장면들을 돌아보았고, 기묘한 일들에 상상으로 익살을 더하고 우스워하며 가끔 입술을 삐죽거렸다. 사람들은 너무나 우스꽝스러웠다. 자기만의 환상이 있었고, 자기도 모르게 어릿광대의 모자를 쓰고 다녔고, 남들의 거짓말은 투명해서 잘 보이지만 자신의 거짓말은 불투명하다고 생각했고, 온 세상이 가스등 불빛 아래서 노랗게 보일 때 자기만 장밋빛인 듯이 모든 것에서 예외라고 생각했다."
메리의 시선이 꽤나 시니컬하죠? 메리는 무대 위 등장인물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이를 관조하는 자신만만한 관객처럼 보여요. 하지만 이 다음 장면에서 메리 또한 무대 위로 불려 올라갑니다. 고모부는 홀로 생각에 잠겨 있던 메리를 침실로 불러 각기 다른 내용이 담긴 두 장의 유언장 중 하나를 불태워 달라고 요구해요. 거액의 유산으로 메리를 회유했지만 메리는 문제가 생길 것을 염려하여 유언장의 내용을 보지도 않은 채 숨이 곧 넘어갈 듯한 고모부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페더스톤은 숨을 거두고, 메리가 유언장을 태우지 않은 덕에 가족들은 예기치 못한 유산 상속의 결과를 맞이하게 돼요.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관조자의 눈으로 한 겹 위에서 세상사를 바라보다가도,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잖아요. 이러한 파고를 명징하게 드러낸 통찰이 대단하다 느껴요. 메리 가스 이외에도, 지리멸렬한 성서와 신화 속 이야기만 파헤치는 성직자, 맑은 영혼과 야망을 가지고 있지만 성직자 남편과 결혼하여(빅토리아 시대 여성이 지닌 사회적 제약이었지요) 이상을 좇기로 한 젊은 여성, 혁신을 바라지만 시골 의사들과 갈등을 맺는 젊은 의사, 사랑을 통해 계층적인 차이를 극복하는 커플 등 깊고 대담한 관찰이 미들마치의 정경 속에 담겨 있어요. 이번 추석 연휴에는 공감과 깨달음이 반복되는 밀당을 담은 ⟪미들마치⟫ 읽어 보시는 거 어때요?
p.s. 저는 이렇듯 사람을 면밀하게 조망하는 소설을 읽고 나면 묘하게 마음이 개운해져요. 소설 속 인물들은 흠결과 모순, 우스운 점을 다들 가지고 살잖아요. 인생을 소설이나 희곡이라고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진 하찮음도 응당 그럴 수 있는 일인 거죠. 그래서 ⟪미들마치⟫ 같은 소설을 읽고 나면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가 생겨나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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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바질레터 에디터들의
벽돌책 추천 잘 보셨나요?
긴 추석 연휴, 맛있는 음식과 좋은 책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바질레터 인스타에서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으니, 놓치지 말고 꼭 참여해보세요!
모두 따뜻하고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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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바질레터, 어떠셨나요?
무럭무럭 자라나고 싶은 바질레터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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