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초입에 인사를 드릴 수 있다니 기쁘네요. 연말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지난날들을 되새겨 보기도 하고, 새로움을 도모하고 싶어지기도 하는 달인 것 같아요.
그런 시월의 첫날에 나누고 싶은 책들을 얘기해 보려고 해요. 세 명의 에디터가 계속해서 삶을 걷게 해 준 고마운 책을 소개합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내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인 거 같아요.
그리고 책은 우리 곁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끔 손을 잡아주지요. 사랑하는 것을 더 사랑하고 아낄 수 있게끔 해 주고요.
부디 독자님들의 시월이 가뿐하고 상쾌하기를 바랍니다.
editor. 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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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편지를 시작하기 전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저희 바질레터가 독자분들을 위해 준비한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어요. (이벤트 기간이 연장되었답니다)
지금껏 바질레터와 함께 해 주신 분들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독자 분들을 생각하며 굿즈를 만들고 편지를 쓰기로 했어요.
이벤트 참여 방식과 자세한 이벤트 내용은 레터 하단에서 알려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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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처음 시작하기에도, 다시 시작하기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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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시... 좋아하세요?
이렇게 물으면 많은 분들이 머뭇거리시더라고요. 싫어하는 건 아닌데 어렵고, 어렵다기보다는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쪽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시 앞에서 자꾸 멈춰 서게 되는 분들께, 그리고 한때 시를 좋아했지만 어느새 멀어진 분들께 『인생의 역사』를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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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심하겠다는 말이 사랑처럼 들릴 때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프롤로그입니다. 브레히트의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가 실려 있는 장이에요. 시의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자신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조심하기 시작해요. 길을 건널 때도, 빗속을 걸을 때도요. 내가 다치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곤란해지니까 나를 함부로 두지 않게 되는 겁니다.
저는 이게 참 사랑 같았어요. 사랑한다고 말하는 대신 빗방울까지도 조심하는 것. 누군가를 좋아하면 내가 달라지잖아요. 나를 조금 더 아끼게 되고, 더 오래 살아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고요. 이 짧은 시 한 편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음 시가 궁금해집니다.
✍️ 나는 왜 계속 읽고 쓰는가
존재론적 정착지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실은 자신도 몰랐던 존재론적 정착지가 하나 정도는 있었던 것이리라. 최승자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은 글쓰기다. (p. 276)
얼마 전 추석이었죠.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삼삼오오 고향으로 내려가곤 하는데 저는 사실 고향이라고 부르고 싶은 곳이 없어요. 그래서 이번 연휴에도 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끔은 그런 시간이 외롭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러다 이 대목을 다시 꺼내 읽었는데요. 문득 제게도 그런 정착지가 있다면 읽고 쓰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슬픔이 찾아오면 늘 책 속으로 들어가곤 했으니까요. 『인생의 역사』를 읽고 나서야 제가 왜 자꾸 읽고 쓰는 쪽으로 돌아오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시를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 없어도 괜찮아요. 오히려 그런 분께 권하고 싶습니다. 반대로 한때 시를 좋아했지만 요즘은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분이라면, 다시 한번 펼쳐보셔도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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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앞에서』 | 최은영
좋아하는 작가님이 매번 뒤에 계시다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써 내려간 에세이입니다. 저에게는 이 책이 '독립적인 나'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준, 분기점 같은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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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서 관계를 붙들고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랑이라 믿었지만 사실은 혼자가 되는 게 무서웠던 마음. 책 속의 「당신이 더는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기분」과 「혼자 사는 연습」을 읽으며, 이별과 상실이 어떤 감정과 경험을 안고 돌아올 수 있는지 차분히 돌아볼 수 있었어요.
이별은 나를 무너뜨리는 사건이 아니라, 내가 나로 서는 법을 배우는 시간일 수 있다는 것. 누군가의 마음이 떠나도 나라는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
그 뒤로 저는 관계 앞에서 조금 덜 흔들리게 되었어요. 한 사람의 말과 표정에 하루의 날씨를 맡기던 일희일비의 습관에서 조금씩 벗어나, 저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하루에 한 조각씩 두려고 했던 것 같아요. 어른이 되는 과정이란 이런 걸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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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만난 때는 소수자의 자리에, 아픈 사람의 자리에 눈을 둘 시간조차 없어질 만큼 바빠졌을 무렵이었습니다. 여성주의 교지를 만나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세월호를 향한 마음. 그런 이야기들이 바쁜 와중에도 잊고 살아서는 안 될 시선이 무엇인지 조용히 되짚어 주었어요.
그래서 저는 20대를 마무리하고 성장의 길을 걸어가려하는 요즘, 이별의 자리에는 조금 더 단단한 나를, 관계의 자리에는 조금 더 느슨한 마음을, 세상을 향한 자리에는 조금 더 다정한 시선을 두려고 노력하게 되었어요.
여러분의 삶에도 분기점이 되어 준 책이 있나요? 그 책 앞에서 여러분은 인생에 어떤 문장을 새로 써 넣으셨는지,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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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상처를 상처로만 남게 하지 않고, 인간을 상처 속에 매몰되어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무감한 사람으로 변화하게 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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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한참 책을 읽어내리다 고개를 드니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제가 오늘 소개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난 뒤 그런 경험을 했어요. 그 덕에 책은 그 어떤 매체보다 우리의 관점에 찰싹 달라붙어서 오래 지속되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기도 했지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저자 룰루 밀러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입니다. 룰루 밀러는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의 불확정성에서 도망치지 못한 채 보통의 인간처럼 괴로워하다, 문득 혼란한 세계의 질서를 바로잡고 싶어 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의 삶에 주목합니다. 조던의 전문 분야는 어류로, 바닷속 어류의 새로운 종을 찾아 이름을 붙이고 자연을 분류하고자 해요.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모았던 모든 표본이 지진으로 인해 파괴되는 불상사가 벌어집니다. 조던은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연구를 이어 나가며 자연의 커다란 청사진을 알아내고자 합니다. 룰루 밀러는 혼돈의 시험에도 지지 않고 나아가는 조던의 끈질김과, 나아가 질서란 것이 자신의 삶에도 이식될 수 있을지 궁금해하며 그의 삶을 따라갑니다.
하지만 그의 삶을 쫓으며 혼돈과 질서란 무엇인지, 질서란 타자의 시선에서 가하는 폭력의 다른 말은 아닌지 의문을 품게 되어요. 조던은 분류학자일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우열이 있다고 믿는 우생학자였거든요. 룰루 밀러는 조던이 그토록 믿어온 선별에 대한 신화를 깨는 발견을 하게 됩니다. 독자들은 수백 페이지의 여정을 함께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결론에 저자와 같이 다다르게 돼요.
다시 제가 잊지 못할 경험을 했던 때로 돌아가 볼까요. 그날의 장소와 시야가 똑똑히 기억에 남아요. 도서관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다가, 책을 덮고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어요. 길을 거니는 사람들, 부지런히 지저귀는 새들과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나무와 풀들, 내 눈이 채 보지 못한 수많은 존재가 엄연히 이 땅 위에 발을 디디고 선, 부피를 가진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았어요.
나를 넘어 다른 존재와 세상으로 관점을 넓힐 수 있는 이야기는 참으로 귀하지요. 누군가의 인정과 선별에 관계없이 각기 고유하게 존재하는 독자님들께 제게 큰 의미가 있던 책을 소개하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이번 레터를 끝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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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기다리고 기다리던(기다려 주셨죠? 헤헤) 구독자 이벤트를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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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럭무럭 자라나고 싶은 바질레터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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