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마다 우리는 무서운 이야기를 찾습니다.
공포 영화, 괴담, 호러/추리 소설들까지.
무섭다는 걸 알면서도 기꺼이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건,
안전한 거리에서 느끼는 짜릿함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이 짜릿함은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함께 사라집니다.
그런데, 이번 레터에서 소개할
『인비인』 - 「윤회 (당한) 자들」의 공포는 다를지도 모릅니다.
귀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 없이
오직 한 사람이 무언가를 믿어가는 과정만으로 이야기가 채워집니다.
두려움에서 시작된 마음이 어느새 확신으로 자라나고,
그 확신은 결국 몸으로 터져 나옵니다.
덮고 나면 남는 건 소름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사람은 왜, 어떻게 믿게 되는가.
어쩌면 이 질문이 귀신이나 괴물보다
훨씬 오래, 훨씬 깊게 우리를 따라올지도 모릅니다.
『인비인』 토크 두 번째 편, 「윤회 (당한) 자들」 !
지금 시작합니다.
(스포 주의 👀)
editor. 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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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인비인》 - 〈윤회 (당한) 자들〉 ㅣ 한겨레출판
원필은 성공한 영화감독을 꿈꾸지만, 현실은 자꾸만 그를 밀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낯선 모임 하나를 알게 된다. 밖에서 보기엔 평범해 보여도 안으로 들어가는 문턱은 생각보다 훨씬 높고 괴이하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의 전생을 품은 채 그 삶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소원한다. 돌아가는 방식은 원필의 생각보다 훨씬 더 끔찍하다.
처음 원필은 이 낯선 세계를 두려워한다. 사람들의 말과 태도에서 서늘함을 느끼고, 여기서 멀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마음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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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1. 들어가기 — 낯선 믿음에 다가가기
2. 원필이가 이상해졌어요 — 믿음이 시작된 순간
3. 호러를 보고, 종교를 갖는 이유 — 짜릿함
4. Spin Off — 엉뚱한 질문
5. 마치며 — 덮은 후에도 남는 질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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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장을 넘기며 — 낯선 믿음에 다가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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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다섯 잎 레터에서는 「인비인」을 통해,
역사라는 거대한 폭력이 어떻게 한 개인의 죄책감을 만드는지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죄책감이 타인에게서 비롯되어 스스로를 옭아매는 감정이라면
이번 「윤회 (당한) 자들」편에서 다룰 '믿음'은 결이 다른 무게를 지닙니다.
타인이 아닌 자기 안의 결핍과 굴곡에서 태어나,
결국 스스로를 지탱하게 만드는 감정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죠.
이번 레터에서는 소설의 주인공 '원필'이 삶의 굴곡을 통과하며
어떻게 믿음이라는 감정에 다다르게 되는지를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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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원필이가 이상해졌어요 — 믿음이 시작된 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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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필의 믿음이 시작된 순간은 언제라고 생각하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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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 당한 자들」 의 주인공 원필은 성공한 영화감독을 꿈꾸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힘겨워하는 '원필'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진입장벽이 높은 한 모임에 발을 들이는데, 그곳 사람들은 저마다 전생을 믿으며 그 삶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원필은 처음엔 낯설고 두려워하지만, 자신만의 전생을 소망을 담아 그 모임에 동화되면서 결핍과 고통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받는 경험을 합니다.
원필이 그 세계에 스며드는 과정은 극적인 회심의 순간이라기보다 소속감과 동질감이 서서히 믿음으로 바뀌어가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에디터 셋이 모여 원필이라는 인물을 따라가며, 믿음이 만들어지는 순간과 그 믿음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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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수 : 처음엔 분명 원필이 윤회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모임원들의 자살을 무서워했어요. 그런데 어느새 그 의식에 동참하고 있죠. 이걸 단순히 '윤회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촉발된 행동이라고만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윤회 자체에 대한 믿음보다는, 원필에게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고 있던 어떤 욕망이 발현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담 전에 성해나 작가님 인터뷰를 찾아봤는데, 믿음에 중요하게 작용한 건 신념 같은 것보다 '관계'였다고 하시더라고요. 원필도 사실은 이 모임에 강한 소속감과 유대감을 느끼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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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색 : 처음부터 환대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슈퍼 아주머니라는 존재도 꽤 큰 진입 장벽이었는데 원필이 어떻게 포섭될 수 있었을까 싶었어요. 이상한 신념을 갖고 있다는 걸 걷어내고 보면, '동질감'과 '소속감'이 시작된 순간부터 믿음도 함께 시작된 게 아닐까 싶어요. 전생과 현실 사이의 괴리로 괴로워하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동질감을 만들어낸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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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슬 : 사이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삶이 힘든 사람들인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공유하는 무의식적인 정서가 있는 것 같아요. 원필이 자신의 전생이라 설정한 '샤오잉'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그 점이 잘 드러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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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색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모임이 애초부터 소속감을 지대하게 느끼는 사람들을 섭외하기 위해,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매일 자살 충동을 느끼는지를 마치 면접처럼 확인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밝혔습니다.
윤슬이 '원필'이 제시한 전생 '샤오잉 이야기'는 결국 허구라는 점을 짚자,
수수는 그럼에도 "(전생으로 설정한) 샤오잉도 결국엔 기구하니까"
그 지점에서 사람들이 모임에 편입되기로 마음을 내준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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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먼저 말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 방언과 신들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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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질감과 소속감으로 서서히 스며들던 믿음은, 결국 몸을 통해 터져 나옵니다. 소설 속 방언이 터지는 장면을 두고, 에디터들은 이를 믿음이 절정에 다다른 순간으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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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색 : 저는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방언이 신앙심의 일종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밀양>이 생각나더라고요. 유괴당한 아들이 죽고 슬픔에 잠긴 신애가 교회에서 찬송가를 들으며 흐느껴 우는 장면처럼, 신앙심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 있잖아요. 모든 사람에게는 삶의 부조리를 타파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그 부조리를 전부 신의 뜻이라고 받아들이는 '종교적 믿음'을 가지면 그 답답함이 해소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원필의 삶이 워낙 기구했기 때문에 윤회에 대한 믿음이 이렇게 폭발적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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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슬 : 태몽을 꾸는 동양계 사람들은 다 신기가 있다는 설이 있다고 해요. 동양의 샤머니즘적인 특징이 특히 서양과 대비되는 지점이 있고, 그리고 이 소설은 결국 인간의 현세에서의 삶, 신념에서 꾸려나가는 영혼 중 '뭐가 진짜 나일까?'라는 물음표를 계속 남겨두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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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수 : 신이 아니라 '환생'이라는 의미론적인 것만을 믿는다는 설정에서 나온 소재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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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이라는 절정을 지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남습니다. 전생이 있다는 믿음, 자살을 통해 전생으로 윤회할 수 있다는 믿음... 이 일련의 믿음은 진실이었을까요, 아니면 그저 믿고 싶었던 이야기였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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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색 : 사람은 진실보다는 본인에게 가까운 정보를 진실이라 믿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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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슬 : "저 사람 만나지 마"라는 말을 들어도, 결국 본인이 좋아하게 된 사람은 계속 좋아하게 되는 것처럼요.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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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색 : 원필은 사실 '자의적으로' 믿은 것이에요. 누군가 강요하지 않았죠. 그래서 사이비가 범죄로 규정되기 어려운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외국에서는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을 신으로 삼아 종교를 만들기도 했잖아요. 그냥 대단한 것 없이도, 믿으려고 하면 믿어지는 것이다. 사이비를 비꼬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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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수 : 믿음이라는 게 실체가 있는 대상에서는 잘 생기지 않는 것 같아요. 실체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가능한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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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슬 : 기담과 괴담에 끌리는 이유도 비슷한 것 같아요. 예측 불가능한 걸 좋아하고, 설명적인 것보다 그런 여백을 좋아하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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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수, 모색 : 실체가 없으면 계속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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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여기서 '사실보다 중요한 믿음'이라는 주제로 확장되었습니다.
모색은 끌어당김의 법칙을 예로 들며, 이미 목표를 이뤘다고 상상하는 것 — 원하는 회사에 합격했을 때 입을 옷, 그날의 점심 메뉴, 과로로 허리가 아플 것을 대비해 파스를 사두는 것까지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행위 — 가 실제로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목표 달성에 도움을 준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방식이 소설 속 '전생을 소망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는 이야기도요.
수수는 이를 학창 시절에 자주 썼던 'r=vd' 공식에 빗대었고,
모색은 당장 실체가 있는 초라한 나 자신보다
믿음에 힘을 실어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이
좋은 의미로는 동기부여에,
조금 어긋난 방향으로는
극단적인 종교적 신념을 갖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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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호러를 보고, 종교를 갖는 이유 — 짜릿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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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밖의 이야기도 해보았습니다. 최근 소설 『신 퇴마록』, 『주와 연』, 드라마 『동궁』, 영화 『호프』처럼 오컬트적이거나 호러적인 서사가 담긴 작품들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작품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한 불안의 해소일까요, 아니면 도파민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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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슬 : 일단 첫 번째로, 현재 '여름'이라는 계절의 영향이 제일 큰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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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색 : 저는 심야괴담회를 좋아하고, 어렸을 때부터 학교 괴담도 좋아했어요. 그냥 재밌어서 좋아했던 것 같아요. 순정만화보다 이런 공포스러운 이야기가 더 좋았거든요. 도파민을 추구하는 오락적인 재미인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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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수 : 저는 원래 무서운 걸 잘 보지 못했는데, 요즘 학교생활에 지치고 난 뒤로 호러 장르물들을 보기 시작했어요. 재밌더라고요. 힘든 생활 중에 짜릿하고 도파민이 터지는, 일종의 저만의 반항이 담긴 귀여운 '자해' 같은 거예요. (근데 여전히 무서워하긴 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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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결국 허구의 공포를 즐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 짜릿함'은
누군가가 사이비나 극단적인 종교적 의식에
빠지는 논리와 그리 멀지 않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인정', '소속'이 주는 짜릿함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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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색 : 현실에 존재하는 사이비의 기본값이 '환대'라는 점을 예로 들고 싶어요. 사이비가 공통의 관심사를 기반으로 개개인을 촘촘하게 얽어놓는 방식으로 포섭한다고 들었어요. 일례로 같은 아이돌을 좋아한다면, 집단 내에서 계획적으로 친해지게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형성된 소속감이 당사자에겐 하나의 '짜릿함'을 만들어내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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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수 : 소설 속 인물들이 자신의 기구한 삶을 읊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밑바닥을 보여준 사람들과의 관계는 쉽게 끊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형성된 소속감 안에서 한 중학생은 죽고 싶은 마음을 먹고, 실제로 죽음으로서 수장으로서 존중받게 돼요. 이러한 수장이라는 지위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모임 밖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지위처럼 느껴졌을 것 같아요. 인정 욕구를 자극하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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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색 : 맞아요. 죽는다는 것에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 오히려 쉽게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거죠. 이런 인정 욕구도 함께 작용했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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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슬 : 외로움에서 벗어나 소속감으로 애착이 생기는 건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종교인들보다도 특히 신과의 유대감, 믿음이 느껴졌던 순간이 있어서 종교를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종교가 있는 사람은 묘하게 편안해 보이고, 안정이 느껴졌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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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색 : 맞아요.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도, 친구들과 멀어지면 불안해지고 무리에 속할 때 안정감을 느끼는 건 방어기제로서 우리 안에 이미 새겨져 있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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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색 : 흑막일 것 같아요. 일부러 원필을 끌어들인 느낌이에요. 계속 비싼 술을 얻어먹으면서 (ㅋㅋ), 사람을 자극할 줄 아는 사람이죠. 자기 인생을 크게 허비하지 않으면서도 사소하고 엉뚱한 마음을 채우는 유형인 것 같아요. 마음이 조금 허약해진 사람을 건드려서 만족감을 얻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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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슬 : 그 단체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도 걸려요. 그래서 원필 옆을 계속 맴도는 것일 수도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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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믿음을 어리석음의 자리에 놓고, 이성을 그의 반대편에 둡니다.
어딘가에 빠져버리는 사람과 나 사이에 쉽게 선을 긋기도 하죠.
하지만 「윤회 (당한) 자들」은 그 선을 쉽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근본적인 이유는 대단한 신이나 신념보다도,
'관계'라는 일상적인 요소와 맞닿아 있었으니까요.
세 명의 에디터들은 이번 대화 내내 원필을 이해해 보려 했지만,
결국 남은 건 답이 아니라 질문이었습니다.
사람은 왜 실체 없는 이야기에 마음을 걸게 될까요.
믿음이라는 게 늘 진실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믿으며 살아가려 하고 기대려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덮고 남는 질문도 아마 이것일 겁니다.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믿음도,
결국은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하는
질문을 남기게 되는 소설이었습니다.
여름밤은 유난히 이야기가 잘 스며드는 시간입니다.
이러한 계절 속에서, 여러분은 어떤 감정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나요?
마냥 무섭기만 한 건 아닌 이 소설이,
여러분께 의미 있는 질문을 남겼길 바라며.
다음 레터에서는 다른 깊은 이야기로 만나보아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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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질레터 선정!
「인비인」과 함께 보면 좋은 작품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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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인지 아닌지보다, 그것을 놓지 못하는 마음이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특히 표제작을 관통하는 것은 '원'이라는 도형이다. 컴퍼스 끝이 중심을 가만히 찌르며 도는 동안, 화자는 그 궤적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없다. 이는 단순한 구속의 이미지라기보다, 한번 그려지기 시작한 믿음이나 기억은 스스로의 관성으로 계속되어 결국 그 자신을 완성해 버린다는, 일종의 존재론적 담론에 가깝다.
이어지는 시집 속 다른 시편들 역시 이러한 영적 의례의 문법을 공유하고 있어, 신비와 애도가 구분되지 않는 이 시집의 세계를 오래 서성이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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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동시에 속이 뒤틀리는, 잊을 수 없는 사실은 당신이 스스로 얼마나 컬트포비아라고 정의하든, 우리가 어딘가에 속하면 그 사실이 우리를 정의한다는 점이다.”
이 책에 나온 말이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나’를 정의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당연한 욕구이자 약점이기도 하다. 그 연약한 살을 파고든 것이 ‘컬트’이다. 결국 이단 종교나 그것과 비슷한 추종 집단에 대처하는 방법은, 포교하는 사람들을 비웃고 쫓아내기보다 ‘삶’이라는 보다 크고 원론적인 문제에 직면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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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과 비현실, 삶과 상실의 경계를 낯선 언어로 건너는 시집이다. 특히 「버려질 나는 아름답다」는 상실과 버려짐을 끝내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담고 있다. 「윤회(당한) 자들」을 읽으며 샤오잉의 마지막 선택이 남긴 여운을 이어 가기 좋은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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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트 종교와 테러를 주제로 한 소설. 한 사람이 상실 이후 신앙 공동체에 빠져드는 과정과 그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이의 시선이 담겨있다.
작가 자신이 한때 깊이 신앙에 몸담았던 경험이 이 소설의 뼈대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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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바질레터, 어떠셨나요?
무럭무럭 자라나고 싶은 바질레터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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