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여름휴가 잘 보내셨나요?
저희 바질레터 에디터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잠시 일상에서 멀어져 여름을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
누군가는 바다로 떠나고, 누군가는 시원한 방 안에 누워 밀린 잠을 자고 책을 읽기도 했는데요.
휴가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저희 곁에 머물렀던 책들을 한 권씩 꺼내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
아직 여름은 조금 남아 있으니까요. 오늘은 저희와 함께 책 속으로 한 번 더 짧은 휴가를 떠나보실래요?
editor.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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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만난 사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 청미래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으시나요? 우연히 비행기 옆 자리에서 이상형을 만난다던가, 카페에서 내가 흥미롭게 읽은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발견한다던가...
그 순간에는 '운명'이라고 믿게 되는 거 같아요.
이 책의 이야기도 딱 그렇게 시작됩니다. 별거 아닌 우연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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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 화자와 클로이가 사랑에 빠지고 결국 헤어지기까지의 전 과정을 스물 네개의 짧은 장으로 보여줍니다. 각 장의 제목부터 흥미롭습니다. '낭만적 운명론', '이상화', '진정성'처럼 사랑의 각 국면에 철학 수업 같은 이름을 붙여 놓았거든요. 재미있는 건 이게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라, 소설과 철학 에세이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화자가 클로이에게 반하는 장면 바로 다음에 '우리는 왜 하필 이 사람에게 반하는가'를 파고드는 분석이 이어지는 식이니까요.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자꾸 멈추게 됩니다. 연애 이야기를 읽고 있었는데, 어느새 내 지난 연애를 복기하고 있거든요. '나도 그때 이유를 나중에 갖다 붙였었지'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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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 친구와 '사랑과 자유주의'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습니다. 자유주의는 우리를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존재라고 전제하지만, 사랑만큼은 그 전제를 조용히 무너뜨리는 감정 같다고요. 이 책을 다시 읽으며 그 말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화자 역시 클로이를 사랑하게 된 이유를 사랑에 빠진 뒤에야 하나씩 찾아 나섭니다.
어쩌면 사랑은 먼저 시작되고, 이유는 나중에 따라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천 챕터 | 「낭만적 운명론」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우연을, 굳이 운명이라 부르고 싶어지는 순간의 심리를 다룬 장입니다. 여행을 앞두고 있다면 가장 먼저 펼쳐보길 권하고 싶은 장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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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맛 첫사랑
『계화의 여름』 배명은 | 위즈덤하우스
유난히 더운 여름, 에어컨 바람을 찾아다니는 것도 지칠 때면 차라리 이 계절을 제대로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이번 휴가에 제가 고른 책은 배명은 작가의 『계화의 여름』입니다.
이야기는 1970년대의 뜨거운 한여름, 천 년을 살아온 이무기와 소녀 계화의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드디어 용이 되려던 날, 계화에게 모습을 들킨 이무기는 승천하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집니다. 복수를 다짐했던 이무기에게 계화는 산딸기를 건네고, ‘여름’이라는 이름을 붙여 줍니다. 그렇게 둘 사이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풋풋하고 애틋한 마음이 싹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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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결국 가장 마음에 남는 건 아주 인간적인 감정들이에요.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 처음 좋아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기억 같은 것들 말이에요. 짧은 이야기 안에 첫사랑과 기다림, 그리고 지나가 버리는 여름의 시간이 담겨 있어요. 그래서인지 페이지를 넘기고 있으면 뜨거운 햇볕과 눅눅한 공기, 여름의 냄새가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분이 들어요!
『계화의 여름』은 150여 쪽의 짧은 소설이라 휴가를 떠나는 길에 가볍게 챙겨 읽기 좋아요. 바다를 바라보며 한 장씩 넘겨도 좋고, 여행지의 숙소에서 느긋하게 읽어도 좋을 거예요!
p.s 저도 여름방학동안 대전으로 여행을 떠나는 차 안에서 읽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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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여자 아닙니다 슬픈 여자입니다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편혜영, 최진영, 정한아, 정보라, 예소연 | 창비
무더위를 맞아 저희도 일주일의 여름방학을 가졌습니다. 분명 일주일이면 오래 쉰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건지! 낮 최고 기온 39도, 한 걸음 나가기만 해도 땀이 뻘뻘 흐르는 무더위를 날릴 소설집을 소개하려고 해요. 귀신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 뒷목이 서늘해지는 5개의 단편이 담겨 있습니다.
소설집 속 모든 여자 주인공들은 ‘미쳐’있어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왜 저렇게 행동하지?’ 답답한 구석을 보이기도 합니다. 서술이 너무 사실적이고 필력도 너무 좋으신 작가님들이라 실제로 인상이 살짝 찌푸려지는 장면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들은 모두 ‘미친 여자’의 ‘미친 행위’의 부도덕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이 왜 미칠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를 몰아넣는 사회와 배경에 대해 날카롭게 고발합니다.
이 소설을 쓰면서 단상을 기록했던 노트를 펼쳐봤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여자들’ ‘서로를 미칠 듯사랑하고 증오하는 여자들’ ‘오직 여자에게만 그 사랑을 주는 여자들’ ‘충돌하고 파괴하고 재건하는 여자들’... 나는 과연 그런 이야기를 썼는가? - 작가 노트 中
창비의 온라인 연재 플랫폼 ‘매거진창비’에서 연재되었던 작품들이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얻었고, 그를 엮어 소설집으로 출간한 것이라고 해요. 저는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교환독서하게 되었는데, 다들 같은 지점에 분노하고, 또 같은 지점에서 슬퍼하고… 여전히 남은 차별의 잔재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미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서로 덜 증오하고 더 사랑합시다
추천 단편 최진영 작가의 <듣고 있어>
‘무사’의 교독 코멘트: 이 페이지 너무 좋아서 각막에 통째로 새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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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사는 게 악마라면, 전 완전 천사인 휴가를.... :)
『악마는 열심히 산다』, 김화진, 민음사
저는 이번 여름 휴가의 대부분을 고요히 혼자 보냈습니다. 바빴을 땐 가지 못했던 카페에서 밀린 일들을 하나씩 털어내고, 혼자 찜질방에 가서 땀을 쫙 빼기도 했어요. 이렇게 혼자만의 여유가 절실했는데, 차분히 스스로를 재정비하고 돌아올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이번 휴가에서 조용히 읽을 수 있었던 책은 김화진 작가의 『악마는 열심히 산다』였습니다.
은둔 청년 가영에게 어느 날 작은 악마 Z가 나타납니다. 원래 착한 사람이 화나면 제일 무섭다는 말이 있죠. 가영도 그런 인물이었어요. 늘 누군가의 마음속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던 사람. 그런 가영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사이버불링을 당하면서 마음이 고장나버려요. 악마와 삶을 바꿔본다는 낯선 제안을 받아들이는 발칙한 도전을 통해, 가영은 자신이 진짜로 원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마주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귀여운 애인을 만나 달콤한 회복을 받기도 해요. (이 소설의 몽글한 포인트 중 하나!💗)
결국 인간은 인간에게 상처받고 인간으로 회복한다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었어요. 역설적으로 이런 삶에서 중요한 건 결국 상대방이 아니라, 내 안의 은둔과 결핍을 깊이 들여다보고 혼자서 곧추서는 일이라는 걸 이 책은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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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에서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건, 등에 프로펠러를 달고 하늘을 유유히 나는 것과 비슷해요. 그렇게 떠올라서야 비로소, 휴가 전 나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 내려다보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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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말하듯, 결국 필요한 건 누군가의 인정이 아니라 혼자서도 곧추설 수 있는 힘이겠죠. 이번 휴가는 그 힘을 다시 세우고 온 시간이었습니다. 프로펠러를 접고 다시 땅으로 내려온 지금, 예전보다 조금은 가벼운 걸음으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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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바질레터, 어떠셨나요?
무럭무럭 자라나고 싶은 바질레터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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